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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간호사 (feat.나의 선택, 나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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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엄마는 간호사를 권했으나 나는 극구 사양하고 컴퓨터 관련학과로 입학을 했다.

인생이 아이러니한게 그 컴퓨터 관련과를 그렇게 졸업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고

어학원에서 근무를 하다가 다시 전문직에 종사하고 싶은 마음에 간호사라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래서 엄마말 들어 손해 볼 것 없다는 건가?

(물론 시간적 손해는 봤고 그에 따른 금전적 손해도 봤을 수 있지만 나는 내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여하튼 나는 돌고 돌아 다시 간호학과를 3년을 다녀 학사를 취득, 국시를 합격했고 지금 이곳 중소도시에 위치한 2차급 종합병원 병동에서 만 4년째 근무 중이다..

 

사실 졸업전에 욕심은 너무 많았지만 사회가 나를 보는 시선은 나는 이미 30대 중반이었고,, 성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어도 탑은 아니었기 때문일까? 2곳 정도의 2차급 정도의 대학병원에 원서를 넣었지만 서류조차도 통과하지 않은 쓴 경험을 겪은 그 이후로는 국시에만 전념하고 싶어 미리 장학금까지 챙겨준다는 현재 병원으로 일찍 취업을 정해놓고 그대로 취업했다.

 

1년 신규시절은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집에서 매일매일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발의 피로를 풀지 않으면 다음날 죽을 정도로 힘들었다. 사실 3교대 직종도 처음이었고 공부할때도 밤을 세워하는것은 절대 하지 않았던 터라 밤근무가 가능할까 했는데 일단은 아직까지 하고 있긴 하다. 여튼 병동은 40병상의 3인실, 30병상의 6인실 이렇게 구성되었는데 그나마도 6인실은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각종 중중 및 치매환자가 거의 대부분이었다.(지금은 환자를 병동으로 입원 시키는데 기준이 상향되어 중중 치매나high risk환자는 받지 않는다.) 그렇게 액팅간호사 2명이서 거의 늘 full bed인 병동의 환자들의 IV, dressing, 각종 처치 등을 다 도맡아 하게 되었다. (지금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로 불리며 60이 아닌 30병상만 보고 있다. 만세~~~워라밸 달성!!)

 

사실 다른 사회경험을 적지 않게 했다고 하지만 딱히 병원과는 인연이 없었던 터라(매우건강상태가 양호해서) 간호대학에서 배운 병원 시스템이 내 지식의 전부였다.

간호대학에서는 자의식을 고취시키고 간호사는 전문직이라며 추켜세우는데 나는 실제로 근무하면서 간호사들 상당수가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며 학교에서 교수님들의 입을 통해 들었던 것과는 매우 다른 느낌의 간호사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었다. 이는 내가 가진 경험의 한계로 좀 더 다양한 곳에 일하는 간호사를 만나지는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대학에서 알려온 간호사=전문직이다라는 것은 3차급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마치 그들만의 리그 같기도 한다.

(실제로 대학에서 젊은 교수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이랑 버스를 몇 번 같이 탔었고 본인이 임상에 있을 때는 같은 3 차급이 아니면 같은 간호사로 인정하기 힘들었고 대학에 와서 석사과정을 지도하면서 3 차급의 병원에서는 상상 불가한 열악한 근무조건, 인력으로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 놀랐고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친구가 1차급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대학병원으로 이직하면서 울면서 공부를 해야 했다고 한다.

실제 근무시간이 10시간을 가뿐히 넘어서고 그렇게 늦게 끝나도 다시 공부하지 않으면 다음날 근무할 때 환자의 목숨이 본인의 손에 달려 있으니 공부하지 않으면 의도적 살인을 하게 되는 게 아니냐며 울면서 공부를 하고 2시간 수면 후 다시 출근하는 생활을 했었다고한다. 물론 이 생활은 지식과 경험이 콜라보를 이루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끝나지만 그때 당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결국은 건강이 좋지 않아 퇴사를 했다.

 

나는 3차급을 가지 못한 게 간간히 후회가 된다. 그래도 나를 선택해준 현재 근무 중인 병원에서도  많이 배웠고 실제로 워라밸이 신규 때보다는 훨씬 생긴 편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이제 앞으로 2년안에 혹은 그보다 더 일찍 이 병원을 떠나기로 했다.

애초에 내가 간호학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해외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드넓은 시각과 경험을 갖고 싶었다.

1년은 너무 힘들었고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는 많이 다른 실제 임상 지식 습득, 피곤해서 잠자거나 얼마나 힘든지 친구들 만나서 징징대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한 것 같다.(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무언가를... 징징댄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그때는 지금만큼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론 뭔가 내가 3교대를 하면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데...이에 대한 보상이 늘 절실하다며 자기연민에 빠져 인생의 계획 따윈 개나 줘버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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